전체 글19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도 여론 조작이 가능했던 이유 인터넷도 없고, 투표 제도도 없던 조선 시대에 ‘여론 조작’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왕위는 세습이고, 왕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존재였으니 민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에서 민심은 생각보다 중요한 정치 자원이었고, 현대만큼 강력하진 않더라도 분명한 영향력을 가졌다. 왕과 대신들은 “백성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통치의 정당성과 연결했고, 사대부 사회는 여론을 명분의 형태로 만들어 정치에 활용했다. 그래서 조선에도 여론을 관리하거나 왜곡하려는 시도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조광조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결국 처형으로 이어졌다. 조선의 여론 조작은 댓글과 알고리즘 대신, 소문과 문서, 상소와 유언비어를 통해 움직였지만, 작동 원리는 .. 2026. 2. 1. 왕도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하는 직업이었다 당신은 왕이 되고 싶은가? 왕이 된다는 것은 권력을 손에 쥐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목숨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었다. 조선의 왕은 독살을 경계해 기미상궁을 곁에 두어야 했고, 잠자는 순간까지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다. 또 왕은 성격과 상관없이 부지런해야 했다. 태평하게 놀고먹는 삶을 원하는 사람에게 왕위는 축복이 아니라 형벌에 가까웠다. 실제로 조선에는 왕이 되기를 두려워하거나, 의도적으로 왕의 자격에서 벗어나려 했던 인물들이 존재했다. 왕이라는 자리는 오늘날의 소방관이나 경찰처럼, 사명감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직업’에 가까웠다.1. 왕의 자리는 영광보다 위험이 컸다조선 시대 왕의 삶을 떠올리면 화려한 궁궐과 절대 권력이 먼저 연상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왕은 언.. 2026. 1. 31. 대한민국 임시정부, 해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해외에서 출발한 이유를 두고, 종종 “국내를 포기하고 도망친 선택”처럼 오해하는 시선이 있다.그러나 그 선택은 회피가 아니라 계산이었다.임시정부 지도부는 당시의 군사력과 국제적 영향력으로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직접 타파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게다가 일본은 ‘문화정치’라는 이름으로 겉으로는 유화책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감시·체포·고문을 동반한 강력한 탄압을 지속했다.이런 조건에서 공개 정치 조직은 국내에서 존속 자체가 불가능했다.그래서 임시정부는 중국 상하이를 택했다.그곳은 도피처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지속하고 국제 사회의 정의와 힘을 연결하기 위한 전진기지였다.해외였기에 군대를 조직할 수 있었고, 자금을 모을 수 있었으며, 외교의 언어로 독립을 호소할 수 있었다.. 2026. 1. 29. 3·1운동, 우연이 아닌 준비된 저항 어렸을 때 3·1운동을 처음 배울 때는 이렇게 이해하기 쉽다. 어느 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그 장면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그래서 3·1운동은 오랫동안 ‘우연히 터진 대규모 봉기’처럼 기억되었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들여다보면, 3·1운동은 감정이 폭발한 사건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되고 전략적으로 설계된 저항이었다. 독립선언서는 일제의 감시 속에서 비밀스럽게 전달되었고, 비폭력이라는 방식 역시 즉흥이 아니라 국제 정세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고종의 죽음, 민족자결주의의 확산, 종교계와 학생 조직을 중심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누적된 분노와 억압을 조직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이 글은 3·1운동이 왜 ‘갑자기’ 폭발한 것처럼 보.. 2026. 1. 28. 안중근 하얼빈 의거의 진짜 의미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흔히 ‘의거’ 혹은 ‘암살’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곤 한다.때로는 분노한 개인의 복수처럼 단순화되기도 한다.그러나 안중근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그는 이 사건을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대한제국이 여전히 주권을 가진 국가임을 세계에 알리는 정치적 선언으로 인식했다.그래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전쟁 행위’로 규정했고,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며 동양 평화를 주장했다.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도,안중근은 그 조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이 글은 하얼빈 의거를비장한 저격 사건이 아니라,주권을 둘러싼 국제 정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1. 복수가 아닌 선언, 안중근이 겨냥한 것은 개인이 아니었다하얼빈에서 .. 2026. 1. 28. 대한제국 선포, 실패한 선택이었을까 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종종 냉소적인 평가를 받는다.“힘도 없는데 무슨 황제국이냐”, “국호만 바꾼다고 현실이 달라지느냐”는 비판은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실제로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도내부 개혁의 기반은 취약했고,군사력과 재정력은 열강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그 결과 대한제국은 상징적 조치에 머물렀고,조선은 결국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하지만 이 사건을 ‘실패한 정치 이벤트’로만 평가하는 순간,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고종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대한제국 선포는 결과만 놓고 보면 무력했을지 모르지만,그 선택에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주변 강대국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조선을 독립 국가로 다시 정의하려는 마지막 발악이 담겨 있.. 2026. 1. 27.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