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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하얼빈 의거의 진짜 의미

by 유용한포스터 2026. 1. 28.

안중근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흔히 ‘의거’ 혹은 ‘암살’이라는 단어로 설명되곤 한다. 때로는 분노한 개인의 복수처럼 단순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중근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그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사건을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여전히 주권을 가진 국가임을 세계에 알리는 정치적 선언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전쟁 행위’로 규정했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며 동양 평화를 주장했다. 을사늑약을 통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다고 알려진 상황에서도, 안중근은 그 조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글은 하얼빈 의거를 비장한 저격 사건이 아니라, 주권을 둘러싼 국제 정치의 언어로 다시 해석하고자 한다.

1. 복수가 아닌 선언, 안중근이 겨냥한 것은 개인이 아니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은 강렬한 장면만큼이나 오해를 낳았다. 총성이 울린 순간, 사건은 쉽게 ‘암살’로 규정되었고, 안중근은 분노에 찬 저격수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안중근의 언어와 기록을 따라가면, 그의 목표는 개인 이토 히로부미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그 자체였음을 알 수 있다.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늑약의 핵심 책임자였고, 일본의 침략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즉 안중근이 겨냥한 것은 ‘한 사람의 생명’이 아니라, ‘침략의 구조’였다.

이 점에서 하얼빈 의거는 복수가 될 수 없다. 복수는 개인적 관계에서 발생하지만, 안중근의 행위는 국가와 국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스스로를 범죄자가 아니라 교전국의 군인으로 인식했고, 그 인식은 그의 행동 전반을 관통한다.

그는 총을 쏜 뒤 도망치지 않았다.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를 외쳤고, 자신의 신분과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는 감정적 충동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으로 설계된 행동이었다.

2. 안중근이 말한 ‘전쟁’과 ‘동양 평화’의 의미

안중근이 자신의 행동을 전쟁 행위로 규정한 것은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었다. 그는 대한제국이 일본과 교전 중인 상태라고 인식했다. 비록 국제 사회가 이를 공식적인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았을지라도, 주권을 침탈당하는 상황에서 무력 저항은 정당한 전쟁 행위라고 본 것이다.

이 인식은 그가 재판 과정에서 보인 태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중근은 자신을 범죄자로 호명하는 재판 절차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고, 전쟁 포로로서의 대우를 요구했다. 이는 개인의 처벌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을 분명히 규정하려는 정치적 발언이었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의 동양 평화론이다. 안중근은 일본을 무조건적인 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는 일본이 제국주의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동양 전체를 파괴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그의 비판은 일본이라는 민족이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체제에 향해 있었다.

동양 평화는 단순한 이상주의적 구호가 아니다. 그에게 평화란 침략이 중단되고, 각 나라의 주권이 존중되는 상태였다. 대한제국의 독립은 동양 평화의 전제 조건이었고, 그 전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침략의 상징을 제거하는 것은 평화를 위한 전쟁 행위로 이해되었다.

3. 을사늑약을 부정한 이유, 주권은 포기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중근 사상의 핵심에는 을사늑약에 대한 분명한 부정이 자리하고 있다.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이 체결한 조약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고, 국제적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전락시켰다. 하지만 안중근은 이 조약을 법적·도덕적으로 모두 무효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주권은 강압으로 박탈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무력을 앞세운 강요 속에서 체결된 조약은 국가 간의 합의가 아니라 폭력의 결과에 불과하다. 안중근은 이를 ‘조약’이 아니라 ‘늑약’으로 인식했다.

이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을사늑약을 인정하는 순간, 대한제국은 더 이상 독립 국가가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를 부정한다면, 대한제국은 비록 힘을 잃었을지라도 법적·도덕적 주권을 유지한 국가로 남는다. 안중근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래서 그의 의거는 절망 속에서 나온 폭력이 아니라, 끝까지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는 조약의 효력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범죄가 아닌 저항으로 위치 지었다.

이 선택은 이후 독립운동의 논리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빼앗긴 나라가 아니라, 불법적으로 침탈당한 나라다.” 이 인식은 무장 투쟁뿐 아니라, 외교와 사상 투쟁의 토대가 되었다.

결론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는 개인적 복수나 충동적 행동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대한제국이 여전히 주권을 가진 국가임을 선언하는 행위로 이해했다. 그래서 전쟁 행위로 규정했고, 동양 평화를 이야기했으며, 을사늑약의 효력을 끝까지 부정했다.

그의 총성은 한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국제 사회를 향한 질문이었다. “강압으로 체결된 조약은 정당한가.” “주권은 힘이 없으면 사라지는가.”

안중근은 이 질문에 자신의 목숨으로 답했다. 그 답은 즉각적인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독립운동의 언어와 논리를 남겼다. 나라가 사라졌다고 말하기 전에, 그 나라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했는지를 묻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하얼빈 의거는 총성이 아니라 선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 선언은 오늘날까지도 주권과 정의에 대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