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를 이야기할 때,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종종 냉소적인 평가를 받는다. “힘도 없는데 무슨 황제국이냐”, “국호만 바꾼다고 현실이 달라지느냐”는 비판은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실제로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도 내부 개혁의 기반은 취약했고, 군사력과 재정력은 열강과 비교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 결과 대한제국은 상징적 조치에 머물렀고, 조선은 결국 식민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실패한 정치 이벤트’로만 평가하는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고종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대한제국 선포는 결과만 놓고 보면 무력했을지 모르지만, 그 선택에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주변 강대국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조선을 독립 국가로 다시 정의하려는 마지막 발악이 담겨 있었다. 이 글은 대한제국 선포를 실패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정신적 선언이자 역사적 메시지로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1. “힘도 없는데 왜?”라는 질문이 놓치는 것
대한제국 선포를 둘러싼 가장 흔한 비판은 명확하다. “실질적인 힘이 없었는데, 왜 황제를 자처했는가?” 이 질문은 군사력, 경제력, 제도 개혁이라는 현실적 기준에서 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국제 질서는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있었고, 조선은 그 경쟁에서 이미 뒤처져 있었다.
실제로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도 군제 개편은 지지부진했고, 재정은 열강 차관에 의존했으며, 관료 체계 역시 근본적으로 바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국을 선포한 것은 현실을 외면한 상징 정치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비판은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할 뿐, 그 선택이 나온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 고종이 마주한 현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국가’였다. 청의 질서가 무너지고,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조선은 더 이상 중립적 존재로 남을 수 없었다.
이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강대국의 질서에 편입되거나, 혹은 스스로를 독립 국가로 선언하며 국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 대한제국 선포는 이 두 갈림길 중 후자를 선택한 행위였다. 성공 가능성은 낮았지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한 선언을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2. 대한제국 선포는 ‘제도’보다 ‘정의’의 문제였다
대한제국 선포의 핵심은 국호 변경이나 황제 즉위라는 형식에 있지 않았다. 그 본질은 “조선은 더 이상 종속된 나라가 아니다”라는 정의의 재설정에 있었다.
조선은 오랫동안 중화 질서 속에서 스스로를 위치 지어왔다. 형식적으로는 자주국이었지만, 외교적 언어와 위계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 체제였다. 하지만 청이 몰락하고 서구식 국제 질서가 들어오면서, 이 애매한 위치는 오히려 위험 요소가 되었다.
고종이 황제를 자처한 것은 단순한 권위 과시가 아니라, “우리는 황제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외교적 언어를 채택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국제 사회를 향한 메시지였고, 동시에 내부를 향한 선언이었다.
비록 제도와 힘이 뒷받침되지 못했지만, 국가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문제는 단순한 실무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정체성은 사람들의 인식과 기억 속에 남는다.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이 나라는 스스로를 독립국으로 인식했다”는 역사적 흔적으로 작동했다.
대한제국 선포를 현실과 의도로 나누어 보면
| 구분 | 현실적 한계 | 정신적·정치적 의미 |
|---|---|---|
| 군사력 | 열강과 비교 불가 | 독립국가 선언의 상징 |
| 재정 | 차관 의존 | 자주 국가 의지 표명 |
| 제도 개혁 | 부분적·지연됨 | 새 국가 체제에 대한 문제 제기 |
| 국제 인식 | 실질적 보호 어려움 | 종속국이 아님을 공식화 |
이렇게 나누어 보면, 대한제국 선포는 현실 정치에서는 약했지만, 국가 정체성의 선언으로서는 분명한 의미를 가진다.
3. 국왕의 발악이 남긴 정신적 유산
고종의 선택을 “무모한 고집”이나 “시대착오”로만 보면, 그가 남긴 또 다른 영향을 놓치게 된다. 대한제국 선포는 즉각적인 국제 정세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조선 사회 내부에 중요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 메시지는 단순하다. “이 나라는 되찾아야 할 나라다.” 국왕조차 나라를 독립국으로 선언하고 끝까지 주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훗날 평민과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기준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독립운동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이 나라는 원래 독립국이다”라고 믿을 수 있어야, 그 믿음 위에서 저항이 가능해진다.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은 식민지 이전에 이미 자주 국가를 선언했던 기억을 남겼다.
이 기억은 의병 운동, 계몽 운동, 그리고 이후의 독립운동에서 정신적 토양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종의 선택은 현실 정치에서는 패배였을지 모르지만, 역사 의식의 차원에서는 완전히 무의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왕이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서사는 백성들에게 “되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정신적 명분을 제공한다. 이 점에서 대한제국 선포는 실패한 정책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메시지였다.
결론
대한제국 선포는 현실적인 힘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한계를 지닌 선택이었다. 군사·재정·제도 어느 하나도 열강에 맞설 수준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조선은 식민지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이 사건을 “아무 의미 없는 상징 정치”로만 정리해버리면, 고종이 던진 마지막 질문을 놓치게 된다. “이 나라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국가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대한제국 선포는 그 질문에 대한 고종의 답이었다. 비록 힘은 없었지만, 조선을 독립 국가로 재정의하려는 발악이었고, 그 발악은 훗날 나라를 되찾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유산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제국 선포는 성공과 실패의 문제를 넘어, 역사 속에서 계속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힘이 없을 때에도 국가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고종의 선택은 지금도 그 질문을 우리 앞에 남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