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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가 자기 가치 판단에 미치는 영향 일의 의미가 사라진 자리한때 노동은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였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자신의 노동이 세상에 남는다는 사실은 존재의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은 더 이상 의미의 언어로 이야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의 언어로만 번역된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더 싸게 만들어내는가. 노동은 인간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단위 시간당 생산성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되었다. 효율 중심의 사회에서 노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사람들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일한다. 노동은 자아 실현의 과정이 아니라, 성과를 증명하기 위한 경쟁의 장이 되었다. 성과주의는 그 안에서 ‘인간의 의미’를 제거하고, 노동을 숫자와 지표의 체계로 재구성했다. 결국 사람은.. 2025. 10. 19.
진정성이라는 강박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규범“나답게 살아라.” 이 문장은 한때 자유의 선언처럼 들렸다.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과 선택을 존중하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진정성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자아 성찰이 아니라, 자기 검열의 문장이 되어버렸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성은 새로운 미덕으로 여겨진다. 솔직하고, 꾸밈없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 이런 인물상이 진정성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표준’은 이미 모순이다. 진정성은 본래 타인의 기준으로 측정될 수 없는 개인의 내면적 진실이지만, 사회는 그마저도 외적인 형식으로 규정해버.. 2025. 10. 19.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자기기만의 심리적 메커니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자기기만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나치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이 짧은 문장은 한나 아렌트의 사유를 바꿔놓았다. 그녀는 그를 괴물로 보려 했지만,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냉혹한 살인마가 아니었다. 성실하고 효율적이며,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믿는 관료였다. 그의 악은 증오나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복종에서 태어났다. 아렌트는 이 현상을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 악은 종종 거대한 형태로 상상된다. 폭력, 학살, 전쟁, 범죄 같은 명확한 형태로. 하지만 아렌트가 말한 악은 훨씬 더 은밀하고, 더 일상적이다. 그것은 특별한 악의나 증오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 2025. 10. 18.
긍정 심리학의 오용과 감정 통제의 폭력성 행복은 개인의 감정인가, 사회의 명령인가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말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 말은 마치 도덕적 명령처럼 작동한다. 불행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이라고 평가받고, 힘들다고 말하면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받는다. 행복은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의무가 되어버렸다. 이 시대의 슬픔은 바로 그 행복의 강박에서 비롯된다. 행복의 의무는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태어났다. 행복은 더 이상 내면의 평온이 아니라, 소비의 결과로 측정된다. 좋은 직장, 넓은 집, 여행, 취미, 자기계발. 이 모든 것이 ‘행복의 징표’로 제시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묻는다. 당신은 충분히 행복한가? 그리고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 노력의 끝에는 이상하게도 더 .. 2025. 10. 17.
정치적 선동에 의한 심리적 변화와 행동 감정의 정치, 이성의 마비정치는 늘 이성과 논리의 영역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정의 언어로 움직인다. 정치적 선동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사람의 마음은 논리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대중은 사실보다 감정에 의해 움직이고, 그 감정은 집단 속에서 증폭된다. 이것이 정치적 선동이 강력한 이유다. 정치적 선동은 인간 심리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 즉 ‘소속되고 싶다’, ‘안전하게 느끼고 싶다’, ‘누군가를 믿고 싶다’는 감정에 기생한다. 정치적 메시지는 단순해야 하고, 감정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사회 문제는 흑백의 도식으로 단순화된다. 선동가는 사람들의 불안과 분노를 읽고, 그 감정을 하나의 방향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성은 감정의 열기 속에서 사.. 2025. 10. 16.
검정색 옷의 심리: 왜 우리는 검정색 옷에 끌리는가? 검정은 감정의 방패누군가의 옷장을 열면, 놀랄 만큼 비슷한 색깔의 옷들이 줄지어 있다. 검정, 회색, 남색. 특히 검정은 시대와 유행을 넘어 늘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 색이다. 검정 옷을 입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심리적인 공통점이 있다. 검정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이자 심리적 장치다. 검정은 심리학적으로 ‘자기 보호의 색’으로 불린다. 검정 옷을 입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을 노출시키기보다, 통제된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 검정은 감정을 숨기고, 자신의 불안이나 혼란을 감추는 데 도움을 준다. 밝은 색은 외부로의 개방을 상징하지만, 검정은 내부로의 수축이다. 그 안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가 있다. 그래서 검정 옷은 슬픔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자존심의 갑옷이다. 검정은 사회적.. 2025.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