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경제학의 구조와 무의식적 욕망
정치경제학은 사회가 어떻게 자원을 분배하고, 권력을 형성하며, 제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는가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전통적으로는 계급, 생산수단, 자본의 축적, 국가의 개입 등이 주요한 분석 범주였다. 그러나 정치경제학이 다루는 사회적 행위자들은 단순히 합리적 계산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무의식적 충동, 욕망, 두려움, 동일시의 과정을 통해 정치적·경제적 선택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정신분석학의 통찰이 접목될 수 있다.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행동 뒤에 숨겨진 무의식의 힘을 탐구해왔다. 개인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이나 효율성만을 좇는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국민은 실제 생활수준이 악화되더라도 특정 정치 지도자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낼 수 있다. 이는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무의식적 동일시 혹은 권위에 대한 의존 욕구 때문일 수 있다. 정치경제학이 구조적·제도적 분석을 제공한다면, 정신분석학은 인간이 왜 그 구조 속에서 특정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욕망의 원천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정치적 대중행동을 분석할 때도 이 두 관점의 결합은 유효하다. 예를 들어 대규모 시위나 투표 참여는 단순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억압된 불안, 분노, 그리고 집단적 무의식이 분출되는 장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비합리적 행동’은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오히려 합리적으로 해석된다.
2. 권력, 억압, 그리고 집단 무의식
정치경제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권력이다. 권력은 경제적 기반을 통제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서 발생하며, 사회 구조를 형성한다. 그러나 권력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억압과 강제력만이 아니다. 권력은 무의식 속에도 뿌리내린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권력은 규율과 담론을 통해 개인을 구성하고 내면화된다.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보면, 권력은 초자아의 내적 목소리와 유사하다. 사람들은 외부의 강압이 없더라도 스스로를 검열하고, 사회가 규정한 규범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욕망을 제한한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국가나 시장이 개인의 행동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으로는, 권력의 효과가 무의식적 차원에서 더욱 깊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특정 브랜드를 소유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낀다. 이 욕망은 단순히 물질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상징적 가치, 즉 ‘인정받고 싶다’, ‘소속되고 싶다’는 무의식적 갈망과 연결된다.
집단 무의식 역시 중요한 영역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동일한 상징, 이미지, 서사를 공유하면서 정치적 연대를 형성한다. 국기, 국가(國歌), 영웅 서사는 모두 무의식을 자극하는 장치다. 정치경제학적으로는 국가가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장치에 불과하지만,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는 집단 무의식이 투사되고 동일시되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권력은 이렇게 경제적·제도적 토대와 무의식적 기제를 동시에 활용하여 작동한다.
3. 욕망과 이데올로기의 교차점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의 사상을 피지배계급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허위의식’이 아니라, 욕망의 구조로 본다. 라캉은 욕망이 결핍을 전제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을 안고 있으며, 이를 보충하려는 과정에서 상징과 환상에 의존한다.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 욕망의 결핍을 메워주는 상징적 장치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권력 유지의 도구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인간이 욕망을 지속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면 행복하다’는 이데올로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노동과 소비로 몰아넣는다. 정치경제학은 이를 착취 구조로 설명하지만, 정신분석학은 사람들이 왜 스스로 이 구조에 매혹되고 벗어나지 못하는지 설명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가 욕망을 구조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은 서로를 보완한다. 전자는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분석하고, 후자는 그 구조 속에서 인간이 욕망하고 동일시하며 억압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결국 정치경제학과 정신분석학을 통합하면, 인간 사회의 권력과 욕망이 어떻게 교차하며, 경제적 제도와 무의식적 충동이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론
정치경제학은 구조를, 정신분석학은 욕망을 설명한다. 두 학문을 결합하면 인간 사회의 복잡한 작동 원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권력은 단지 제도적 억압이 아니라 무의식의 억압으로 작동하며,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거짓이 아니라 욕망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다. 정치와 경제, 무의식과 욕망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강화되고 유지된다. 따라서 두 시각의 접목은 오늘날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