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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수원 화성 건설에 숨은 정치적 의도

by 유용한포스터 2026. 1. 27.
수원화성 지도

오늘날의 수원 화성은 ‘아름다운 성곽’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성벽을 따라 걷기 좋게 정비된 산책로, 야경, 역사적 분위기 덕분에 데이트 코스에도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소가 처음부터 낭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수원 화성은 조선 정조 때 건설된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고,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 모델’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동탄이나 일산 같은 계획도시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군사·행정·상업이 결합된 복합 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설계되었고, 정조가 꿈꾼 국가 운영 방식의 실험장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실험의 바닥에는 하나의 현실적인 목적이 깔려 있었다. 바로 왕권 강화였다. 당시 조선은 노론 중심의 정치 구조가 굳어져 있었고, 노론은 정조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세력이었다. 정조가 화성을 ‘새로운 도시’로 만들었던 이유는 단지 이상주의가 아니라, 한양 중심 권력 구조를 비켜가 왕권을 다시 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와 맞닿아 있었다.

1. 수원 화성은 ‘예쁜 성곽’이 아니라 ‘정조의 신도시’였다

수원 화성을 성벽과 문루 중심으로만 보면,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핵심을 놓치게 된다. 정조가 만든 것은 성곽만이 아니라 ‘도시’였다. 성은 도시를 감싸는 외곽이고, 도시는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정조는 화성을 단지 적을 막는 방어용 성으로 끝내지 않았다. 행정 기능이 들어가고, 군사력이 배치되고, 상업과 유통이 돌아가는 구조를 함께 설계했다. 이 조합은 당시 기준으로 매우 선진적인 구상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신도시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조건이 있다. 주거만 있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일자리·행정·교통·상업이 동시에 작동해야 ‘도시’가 된다. 수원 화성 역시 비슷한 방향성을 갖는다. 계획적으로 구조를 짜고, 그 공간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다는 점에서 ‘정조의 신도시’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군사와 행정이 중심을 잡고, 상업이 도시의 피를 돌게 하는 방식이었다.

정조가 화성에 이런 복합 기능을 부여한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한 성곽은 전쟁이 끝나면 의미가 줄어든다. 하지만 도시 시스템은 전쟁 여부와 상관없이 왕권의 기반이 된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돌고 행정이 작동하는 공간’은 권력의 뿌리로 이어진다. 정조는 화성을 통해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만들려 했다. 그가 꿈꾼 국정 운영 모델은 책상 위의 이상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 구현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2. 군사·행정·상업의 결합, 그리고 ‘국가 운영 실험’

수원 화성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 도시 안에 국가 운영의 핵심 기능을 통합했다”는 점이다. 군사 기능은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힘이고, 행정 기능은 법과 제도로 질서를 세우는 힘이며, 상업 기능은 경제를 통해 사람을 붙잡는 힘이다. 정조는 이 세 가지를 따로 두지 않고 하나로 결합시키려 했다. 이것은 단순한 도시 건설이 아니라, 국가 운영 방식 자체를 ‘다르게’ 해보려는 시도였다.

조선의 권력은 오랫동안 한양 중심으로 굴러갔다. 정치, 인재, 정보, 물자가 한양에 집중될수록 왕권은 한편으로 편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험해진다. 왜냐하면 권력의 ‘관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특정 세력이 관성을 잡으면 왕조의 중심이 왕이 아니라 그 세력이 된다. 정조가 화성을 통해 하고자 했던 것은 이 관성에서 벗어나는 실험이었다. 한양이 전부가 아닌, 또 하나의 중심을 만들어 정치와 행정의 흐름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때 상업의 기능은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다.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이 모여야 하고, 사람은 생계가 가능해야 머문다. 즉 상업과 유통은 ‘사람을 모으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다. 정조가 화성을 단지 군사 거점으로만 만들었다면, 그곳은 병력만 있는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업 기능이 결합되면 화성은 ‘사람이 사는 도시’가 되고, 사람은 곧 세금이자 행정이자 왕권의 기반이 된다. 정조는 이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수원 화성을 ‘정치 프로젝트’로 볼 때 핵심 요소 정리

요소 겉으로 보이는 목적 정치적 의미(숨은 의도)
군사 기능 외적 침입 대비, 방어 강화 왕이 통제 가능한 군사 기반 확보
행정 기능 지역 통치 효율성 향상 한양 중심 관료 권력에서 일부 분산
상업 기능 도시 활성화, 경제 성장 사람과 자원을 끌어와 ‘새 권력 기반’ 형성
계획도시 구조 질서 있는 도시 건설 정조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설계·실험

이 표를 보면, 화성은 방어용 성곽이라기보다 정조의 국가 운영 실험장에 더 가깝다. 눈에 보이는 기능들 뒤에는 “왕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구조”가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3. 노론 중심 사회에서 정조가 ‘다른 판’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이유

정조의 화성 건설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당시 정치 구도를 봐야 한다. 조선 후기 조정은 노론 중심으로 굳어져 있었고, 노론은 정조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아니었다. 물론 정치 세력을 단순히 선악으로 나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조가 원하는 개혁과 인사 운영, 왕권 강화가 노론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지점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정조는 한양에서만 정치를 하면 결국 노론이 짜놓은 구조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조에게는 ‘다른 판’이 필요했다. 화성은 그 판이었다. 왕이 마음먹은 방향으로 도시를 설계하고, 군사·행정·경제를 엮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성이 단지 ‘피난처’가 아니라 ‘대안의 중심’이라는 점이다. 정조는 한양을 버리려 한 것이 아니라, 한양만이 유일한 중심이 되는 구조를 바꾸려 했다. 중심이 두 개가 되면, 권력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왕에게 선택지가 생긴다.

정조의 정치적 의도는 여기서 더욱 선명해진다. 왕권을 강화한다는 것은 단지 왕이 더 강하게 명령한다는 뜻이 아니다. 왕권은 구조로 강화된다. 사람이 모이고, 군사력이 있고, 행정이 작동하고, 경제가 살아 있는 곳은 권력의 기반이 된다. 정조는 화성에 그 기반을 세워 “왕이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화성이 아름다운 이유는 정조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마저 ‘정치적 설계’의 일부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질서 있고 정돈된 공간은 곧 통치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수원 화성을 걸으며 느끼는 안정감과 정돈된 구조는, 어쩌면 정조가 당대 조선에 주고 싶었던 메시지의 잔상일 수 있다. “이 나라는 이렇게 운영될 수 있다.” “권력은 기득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화성은 그런 선언이었다.

결론

오늘날 수원 화성은 데이트 코스로 소비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사랑받는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정조의 매우 현실적인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었다. 수원 화성은 단순한 성곽이 아니라 계획도시였고, 군사·행정·상업을 결합한 국가 운영 모델의 실험장이었다.

정조가 이런 실험을 감행한 이유는 조선 후기 노론 중심 정치 구조 속에서 왕권의 주도권이 쉽게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양이라는 기존 판만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판을 만들었다. 화성은 정조의 꿈이자 전략이었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권력 구조를 재배치하려는 정치적 장치였다.

결국 수원 화성을 다시 본다는 것은, ‘역사 유적을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왕이 권력을 어떻게 설계하려 했는지, 그리고 도시가 어떻게 정치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수원 화성은 돌로 쌓은 성벽이 아니라, 정조가 돌로 써 내려간 정치적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