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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실패한 정책들로 보는 도전 정신

by 유용한포스터 2026. 1. 25.

세종대왕 초상화

세종대왕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는 천재적인 왕, 과학·문화·정치 전반에서 업적을 남긴 성군이다.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백성을 향한 깊은 애민정신을 실천한 위대한 군주라고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 면모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세종이 추진했던 모든 정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세종은 ‘완벽한 왕’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그의 국정 운영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때로는 백성에게 부담을 주기도 했다. 오히려 이러한 실패는 세종이 얼마나 끊임없이 시도하고 도전했던 왕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한 부분이다.

강제 이주 정책—백성을 위한 정책이 백성을 괴롭게 하다

세종은 국경 안정과 개발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강제 이주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북방 지역의 인구를 확보하기 위해 백성을 이동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국가 입장에서 보면 전략적으로 필요한 조치였지만, 정작 옮겨지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생업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가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아주 고통스러운 조치였다.

세종은 국가적 균형 발전을 고려해 정책을 실행했지만, 당대의 교통·치안·농경 환경을 고려하면 이주민들은 생존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결국 여러 지역에서 불만이 쌓였고, 이주 정책은 세종의 의도만큼 순조롭게 정착하지 못했다. 이 정책은 “백성을 위한 정책도 백성이 힘들다면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 사례였다.

칠정산—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적용이 어려웠던 조선식 역법

세종이 추진했던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바로 조선식 역법, ‘칠정산’의 정비이다. 외국 역법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었지만, 실제 농민들이 사용할 달력으로 보급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계산 과정이 어려웠다.

칠정산은 천문학적으로는 당대에서 매우 뛰어난 수준이었지만, 현실적인 활용도는 매우 낮아 부분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세종이 의도한 “조선의 모든 백성이 정확한 역법을 사용하길 바란다”는 목표는 실질적 상황과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정전제—토지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끝내 미완에 그친 개혁

세종이 추진했던 토지 정책 중 가장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바로 정전제(井田制)의 도입 시도였다. 정전제는 중국 고대 제도를 참고해 백성에게 공평하게 토지를 분배하고 국가가 토지 기반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개혁이었다.

성군으로 알려진 세종답게, 토지 문제 역시 백성 중심의 관점에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고려 말부터 이어져 온 거대한 토지 이해관계와 사유지 기반의 체계는 너무나 견고했다. 이미 많은 권문·사대부들이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정전제가 시행되면 기득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세종이 강력히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전제는 귀족과 지주 세력의 반발에 부딪혀 끝내 현실에서 실행되지 못했다. 이 정책은 세종의 의지와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시대적 구조를 넘어서기 어려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법(貢法)—백성 부담을 줄이려 했지만 오히려 혼란을 키우다

공법은 세종이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조세 제도 개혁이다. 지역별 수확량과 토양의 질을 고려해 세금을 공평하게 걷겠다는 취지였지만,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생산량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어떤 지역은 가뭄에 취약했고, 어떤 지역은 흉년과 풍년의 변동 폭이 매우 컸다. 그런데 공법은 지역별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어떤 곳에서는 세금이 과중해지고, 어떤 곳에서는 세금이 지나치게 적어 국가 재정이 불안정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논쟁이 너무 많아 시행에만 10년 넘게 걸렸고, 정착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종의 애민 정신이 반영된 정책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복잡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정책적 한계가 있었다.

세종의 실패가 말해주는 것—완벽한 왕이 아니라 도전하는 지도자

세종의 실패한 정책들을 보면 이상적이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실패한 정책들은 당시에는 혁신적인 내용을 닮고 있었다. 그 정책을 생각해 낸 것도 똑똑하지만 누군가는 용기가 없어서 그 정책을 생각으로만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은 실현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백성의 삶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지도자였다.

그는 완벽해서 위대한 왕이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바꾸려는 용기”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도하려는 태도” 이 두 가지가 있었기에 세종은 시대를 넘어 성군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결국 세종의 실패는 곧 그의 위대함의 일부다. 모든 정책이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보여준 실험정신, 창의성, 국가를 향한 진심은 성공보다 오래 남아 조선의 발전을 이끌었다. 세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가장 성군다운 군주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