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옛 건축물들을 바라보면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자부심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국가에 대한 소속감’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일 것이다. 사람은 과거를 통해 현재의 상태를 정의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건축물 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정체성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위기 상황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 된다. 위기의 순간이 있었던 역사를 돌이켜보면, 공동체의 뿌리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사회일수록 혼란의 순간에 더 단단하게 뭉칠 수가 있다. 따라서 지금은 사라져서 볼 수 없고 기록에만 남아있는 조선시대 읍성의 흔적을 쫓아 기록하고 복원하는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다시 세워서 국가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할 것이다.
조선시대 읍성이 갖고 있던 의미
읍성은 도시의 경계를 나타내는 기능만 하는 성곽이 아니었다. 행정 기능, 군사 방어, 지역 주민의 생활 안정까지 책임졌던 지역 중심의 종합 시스템이었다. 조선의 지방 도시 대부분은 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사람의 통행이 많은 성문을 중심으로 시장이 열리고 관아가 생겼다. 오늘날 도시의 형태를 만든 출발점이 바로 읍성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개항기 이후 성곽 철거령, 일제강점기의 도시 정비, 해방 후 급격한 도시 개발을 거치며 읍성의 상당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지형의 미묘한 높낮이나 도로의 곡선 정도뿐인 곳이 많다. 그러나 이 미약한 흔적만으로도 당시의 도시 구조와 사람들의 삶을 복원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읍성 흔적 조사는 여전히 가치가 크다.
실제로 사라졌지만 다시 발견된 읍성들
1. 전주읍성 – 지도에서 사라졌던 성곽
전주읍성은 조선 후기까지 지역을 방어한 중요한 성이었으나, 일제강점기 ‘근대 도시’ 조성을 이유로 대부분 철거되었다. 성벽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도심 지하 공사 과정에서 성곽 일부가 발굴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돌 하나, 기단 하나가 성곽이 있을 당시의 도시 구조를 밝히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읍성 복원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 진주읍성 – 남강변에 다시 드러난 성벽
진주성은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진주읍성’이라는 또 다른 성이 별도로 존재했다. 진주읍성은 기록으로만 존재했고 오랫동안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남강 주변 도시 개발을 하던 중 성벽의 기초석이 발견되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되찾았다. 당시 생활권, 군사 배치, 민가 분포까지 연구가 가능해져 잊힌 읍성의 가치를 다시 증명한 사례다.
3. 청주읍성 – 도심 속 도로가 곧 성곽의 흔적
청주읍성은 성곽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도시의 도로 구조가 읍성의 외곽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성곽’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던 청주 도심 거리의 곡선이 실제로는 성벽의 흔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관심을 모았다. 이처럼 흔적이 눈에 띄지 않아도, 지형과 도시 구조 분석을 통해 본래 모습을 복원해낼 수 있다.
전주읍성, 진주읍성, 청주읍성을 표시한 위 지도를 잠깐 보자. 세 읍성은 모두 한반도의 중심부와 남부에 위치해 있다. 지도를 그린다면, 먼저 한반도 윤곽을 간단하게 그리고, 서해 중부 내륙 쪽에 전주(전라북도), 남해를 향해 열려 있는 남강 주변에 진주(경상남도), 충청 내륙 중앙에 청주(충청북도)를 표시하면 좋다. 전주·진주·청주 세 지점을 선으로 이으면, 각기 다른 지역에서 지방 행정과 방어를 책임지던 거점이 어떻게 공간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지 한눈에 보이게 된다.
읍성 복원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사라진 읍성을 찾아 복원한다는 것은 과거 건물을 재현하는 일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그 속에는 당시 사람들이 걸었던 길, 모여 살던 방식, 위기의 순간을 이겨냈던 기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을 되살리는 과정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스스로의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과도 같다.
국가 정체성은 거대한 이념이나 구호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돌 하나, 성문 하나, 터 한 켠의 기억에서 차근차근 쌓여 만들어진다. 잊힌 읍성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우리의 자부심을 되살리고,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문화적 작업이다.
조선 읍성의 현재 상태 비교
| 읍성 이름 | 현존 여부 | 남은 흔적 | 특징 |
|---|---|---|---|
| 전주읍성 | 부분 발굴 | 성벽 기단, 문지 일부 | 도시 지하 공사 중 재발견 |
| 진주읍성 | 부분 확인 | 성벽 기초석 | 남강 개발 중 흔적 조사 |
| 청주읍성 | 형태 소실 | 도로 곡선, 지형 배치 | 도시 구조가 곧 성곽의 흔적 |
결론: 잊힌 성곽을 기억하는 일의 가치
우리가 옛 건축물을 보고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라는 중요한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읍성의 흔적을 찾고 복원하는 일은 사라진 돌담을 다시 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적 기억을 되새기고, 미래 세대에게 뿌리를 전해주는 작업이다.
지금 눈앞에서는 보이지 않더라도, 땅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조선인의 삶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발견하고 이어가는 일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를 넘기게 해주는 중요한 자원을 수집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