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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된 사찰이 들려주는 고려인의 삶

by 유용한포스터 2026. 1. 24.

고려 시대는 불교를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갔다. 정치, 교육, 문화, 예술 뿐만아니라 백성의 일상적인 삶까지도 불교 사상이 영향을 끼쳤다. 그러므로 고려 시대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 사회적 생활의 중심이었던 사찰을 살펴보는 게 필수다.

하지만 지금은 고려 시대에 있었던 수많은 사찰들이 현존하고 있지 않다. 전란의 피해, 자연재해, 조선 시대 억불정책, 근대화에 따른 훼손 등 여러 이유로 사찰이 완전히 무너지고 터만 남은 곳이 많다. 따라서 폐사된 사찰 터에 남겨져 있던 유물들을 발견하여 당시 사회상을 연구한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시대 사찰 터에서 발견된 기단, 석탑 조각, 기와, 용머리 문양을 통해 고려의 모습을 찾아보겠다. 겉보기에는 그저 부서지고 쌓여 있는 돌덩이들일지 모르지만, 이 유물들은 고려인들이 어떤 공간에서 공부하고 기도하며 살았는지를 세밀하게 들려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다.


1. 기단에서 읽히는 고려 사찰의 규모와 사회적 역할

기단

발굴조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개 기단이다. 사찰 기단은 건물을 지탱하는 구조물이다. 이 기단으로 사찰의 쓰임새와 사회적 중요도를 비춰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북 봉화 지역의 한 폐사에서 발굴된 대형 기단은 수행 공간뿐 아니라 학문을 연구하던 강당 역할도 함께 했던 대법당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기단의 너비와 돌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이 사찰이 단순한 지방 소규모 절이 아니라 지역의 교육 중심지였음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사찰에서 승려뿐 아니라 일반 백성의 자녀들도 기초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찰의 규모는 곧 그 지역의 문화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기단이 들려주는 고려인의 생활상

기단석의 마모 정도, 방향, 배치 방식은 당시 사람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였는지도 알려준다. 법당으로 향하는 길이 넓게 난 기단 앞마당은 그곳이 많은 사람이 모이던 장소였음을 의미하며, 작은 건물터들이 법당을 둘러싸고 있다면 수행 공간과 거주 공간이 분리되어 있던 사찰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2. 석탑 조각이 남긴 신앙·사상·정치의 흔적

석탑 조각

 

석탑은 사찰의 정체성과 위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폐사지는 석탑이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지 않고, 부서진 탑신 조각, 둘러앉은 기단석, 떨어져 나온 옥개석만 전해진다.

그럼에도 석탑 조각은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1) 연꽃 문양이 말해주는 불교적 세계관

연꽃은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깨달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석탑 조각에 새겨진 연꽃은 석탑을 아름답게 꾸며줄 뿐만아니라 당시 불교 사상 그 자체를 반영한다. 문양의 깊이와 비례를 분석하면 장인의 숙련도를 추정하여 사찰 운영을 후원했던 세력까지 파악할 수 있다.

2) 부처의 사리를 모셨던 신앙의 중심

석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곳이기도 했다. 따라서 규모가 클수록 왕실 혹은 귀족의 후원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정 지역에서 발견된 고급 화강암 석탑 파편은 그 지역의 경제력과 정치적 중요성까지 반영하고 있다.

3) 파괴된 모습이 들려주는 또 다른 역사

일부 석탑은 정교하게 조각된 면이 의도적으로 훼손된 채 발견되는데, 이는 전란이나 조선 시대 억불 정책의 산물일 가능성이 있다. 유물의 ‘손상된 상태’ 자체가 당시의 정치·사회적 사건을 보여주는 기록인 셈이다.


3. 용머리 문양과 기와 조각에서 드러나는 고려인의 일상

용머리 문양

 

사찰에서 남은 기와 조각은 구성만 보아도 그 시대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지붕 끝을 장식하던 용머리 문양은 사찰이라는 공간이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녔는지를 설명해준다.

1) 용이 지켜주던 공동체

고려인들에게 용은 ‘수호의 상징’이었다. 사찰은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서 마을 전체의 평안을 기원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지붕에 용머리를 새기고 악귀를 막는 의미를 부여했다. 즉, 사찰 건축물에는 종교적 의미와 실용적 기원이 동시에 담겨 있다.

2) 기와의 곡선에서 드러나는 기술과 미감

기와의 굴곡과 두께는 당시의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 고려 시대 기와는 지역마다 모양이 미묘하게 달라 기와 조각만으로도 지역 간 교류 수준, 사찰의 경제력, 기술 집단의 이동을 상당 부분 추정할 수 있다.

3) 기와 조각이 알려주는 생활의 흔적

기와 뒷면에 찍힌 제작 흔적, 손가락 자국, 흙의 배합 방식 등은 사찰에서 일했던 장인, 승려, 노동자들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이는 곧 고려의 경제적 기반과 생활 문화가 사찰을 통해 얼마나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4. 실제 발굴 유물 비교를 통한 고려 사찰 기능 분석

유물 종류 생활상 단서 추정 가능한 기능
기단 석재 건물 규모, 마루 구조, 중심 공간 위치 법당 역할, 교육기관 기능, 지역 집회 장소
석탑 조각 예술 양식, 불교 의례 중심성 왕실 후원 여부, 사찰의 정치적 위상
기와 및 용머리 문양 생활 신앙, 장인의 기술력, 지역 경제 수준 사찰의 권위, 공동체 보호의 상징성
토기·철기 파편 사찰 내 식생활, 생활 도구 사용 승려들의 일상과 사찰 경제 활동

5. 잊힌 사찰 터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

폐사된 사찰은 단순히 무너진 종교 건물의 잔해가 아니다. 그곳은 고려인의 신앙, 일상, 정치, 교육이 동시에 존재했던 복합 문화 공간이었다. 따라서 사찰의 터를 조사하고 유물을 다시 해석하는 일은 곧 고려인의 삶 전체를 복원하는 작업과 다름없다.

사라진 사찰 터를 찾아가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 하나, 조각 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는 순간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거센 바람 아래 묻혀 있던 먼지가 조금씩 걷히듯, 우리는 폐사된 사찰에서 잊힌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사찰은 과거에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에게 남은 유물은 적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고려의 사찰이 남긴 흔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뿌리와 문화적 연속성을 확인하게 된다.

결국 폐사된 사찰은 말없이 묻혀 있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를 알려주는 가장 순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가 그 흔적을 계속해서 읽어내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